본문: 고린도전서 14장 1~19절
레마: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고전14:9)
<본문 요약>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그중에서도 특히 예언하기를 구하라고 한다.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기에 알아듣는 사람이 없지만 예언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기에 사람에게 덕을 세우며 용기를 북돋우고 위로를 주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소리가 있고, 그 어느 것도 의미 없는 소리는 없다. 그러므로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나는 그 사람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그 사람도 내게 외국인이 될 것이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이니 영적인 선물을 간절히 바라며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선물을 넘치게 받도록 힘쓰라고 말씀한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한다. 교회에서 방언으로 일만 마디를 말하는 것보다 깨달은 마음 다섯 마디를 나누는 것이 덕을 잘 세운다고 말씀한다.
<해석 및 적용>
바울이 방언보다 예언을 더 사모하며 예언하기를 더 힘쓰라고 하는 것은 방언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영의 소리이기에 사람은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언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기에 듣는 사람에게 덕을 세우며 용기와 위로를 준다.
방언도 귀하다. 영으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은 개인에게 많은 유익을 준다. 하지만 공동체에는 예언이나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이 그 공동체를 세워가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등을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전달하는 것도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잘 전달해야 한다. 아무리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게 전달한다면 상대방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고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없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눈높이를 맞춰야 알아듣는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전달 방법은 효과적이지 않다.
아버지!
상대방이 알아듣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며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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